Limited Edition! 한정판 피규어 인기 비결은?
2016. 01. 25
몇 년 사이 ‘키덜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죠. 레고, 나노블럭 등 작은 완구나 캐릭터 상품들에 열광하는 이들이 제 주변에도 부쩍 늘었는데요. 조금 유별난 취미로 치부되었던 것이 이제 박람회가 열리고, 전문 매장이 여러 곳 문을 열 정도로 큰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정판 피규어 열풍이죠. 대체 작고 값싼 피규어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줄을 서서 가지려 드는 건지, 그 인기 비결을 파헤쳐보겠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피규어 돌풍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피규어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봐야겠죠. ‘조각상’이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피규어(Figure)는 캐릭터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축소판 인형을 의미합니다. 주된 소재는 ‘레고’의 소재로도 소개드렸던, 열과 충격에 강한 고기능성 플라스틱 ABS이고요. 잘 접히는 관절로 다양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영화 속 캐릭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마니아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월급도둑으로 유명합니다.
피규어는 관절이 많고 실제 캐릭터와 유사할수록 그 가치가 높습니다. 사운드나 액션이 가미된 고급 피규어의 경우엔 대량생산이 어려워 전문가가 한 땀 한 땀 그리고 만들기 때문에 더욱 비싸고요. 가수 이승환, 최현석 셰프, 허지웅 작가, 배우 심형탁 등은 방송에서 피규어 마니아임을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워낙 경제력이 담보되어야 하는 취미라서 피규어 수집이 어린이들보다 어른, 즉 키덜트 층에 인기가 많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피규어가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을 전후로 팬덤이 발달하면서 서태지, 배용준 등 인기스타 피규어가 출시된 것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는데요. 다양한 해외 콘텐츠의 유입과 자신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된 사회 분위기 또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규어의 대중화에 무엇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인터넷’인데요. 자신이 갖고 있는 피규어를 자랑하고,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피규어를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었던 덕분에 마니아들 사이에 교류의 장이 열리며 피규어 문화가 더욱 흥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피규어를 마케팅 전면에 활용하는 기업도 늘어났는데요. 그 원조는 1979년부터 꾸준히 어린이 세트인 ‘해피밀’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헬로키티’ 등의 피규어를 증정했던 패스트푸드 브랜드 ‘맥도날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짜 장난감 정도로 알려졌던 해피밀 피규어가 생각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웠던 덕분에 새로운 피규어가 출시될 때마다 마니아들의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피규어의 인기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에는 ‘슈퍼마리오’와 ‘미니언즈’ 피규어 출시를 앞두고 매장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장관을 이루기도 했죠.
피규어의 마케팅 효과를 깨달은 기업들은 지난해 앞다투어 한정판 피규어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롯데리아’의 ‘아톰’, ‘원피스’ 시리즈를 비롯해 편의점인 ‘GS25’에서는 영화 ‘스타워즈’와 카툰 ‘피너츠’의 캐릭터 피규어를, ‘CU’는 국내 블록 완구 제조사인 ‘옥스포드’와 제휴해 자체 제작한 블록 세트를, ‘세븐일레븐’은 ‘미키마우스’와 ‘어벤저스’ 시리즈를 판매하거나 증정하며 프로모션에 활용했죠.
작년 말에는 심지어 소주 브랜드인 ‘처음처럼’이 디자인그룹 스티키몬스터랩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스티키몬스터’ 모양의 용기에 담긴 소주를 매일 1,000병씩 한정판매하고 동일 피규어를 증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 ‘선착순 증정’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피규어 프로모션은 수집욕이 충만한 마니아들을 자극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들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피규어의 주인이 되고자 긴 시간 줄을 서기도 하고, 정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죠. 그러한 열정을 노린 피규어 마케팅은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긴다는 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니아로서는 새로운 피규어를, 기업으로서는 화제성과 수익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동안 피규어 마케팅은 계속될 듯 보입니다.
마니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또한 눈에 띄는데요. 소수의 취향을 넘어 대중적인 흐름으로 주목 받으면서 ‘키덜트’를 산업화하려는 움직임이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대규모의 ‘Kidult & Hobby Expo’의 방문객은 가파른 상승세를 잇는 중이고, 고급 소비문화의 장이라 일컫는 백화점에서 피규어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죠. 작년 3월에는 6개층 규모로 국내 최대의 피규어 박물관인 ‘피규어 뮤지엄 W’가 개관하기도 했답니다.
어떤 이들에게 피규어는 의미 없는 작은 플라스틱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피규어가 어린 시절 책과 TV, 영화에서 마주했던 꿈의 대상을 현실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매개일 수도 있죠. 어쩌면 그들에게 피규어는 차마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꿈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니까요.
*메인 이미지 출처: JD Hancock,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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