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지속가능성은 2차 전지 경쟁우위의 새로운 원천
2020. 09. 07
코로나19 말고 지금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요. 집필을 시작하고 도입부를 코로나19 이야기로 써 놓았다가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코로나19의 영향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거니와 우리 경제에도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슬기로운 대응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환자가 늘어나는 일이 계속되는 우울함의 반복이라 할만합니다.
코로나19의 한가운데 세계는 “회복(recovery)”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의 침체와 고용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며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요. 코로나19 이후를 위한 세계의 핵심 의제는 “그린”입니다. 세계 각국은 경제 회복을 위해 지속가능성 부문에 투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에 앞서 이미 세계는 기후변화가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기후변화의 문제는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럽연합은 2019년 12월 미래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하였으며, 코로나19 영향으로부터 회복의 과정에서도 녹색 전환을 핵심축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 한국판 그린 뉴딜을 통해 사회·경제의 지속가능성 향상에 향후 5년간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린 웨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가 녹색 분야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겠다고 하고 있는 지금 2차 전지 산업에는 기회의 창이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이 지향하는 녹색 미래상에서 재생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에너지 시스템, 전기차가 중심이 되는 모빌리티 시스템은 빠진 적이 없습니다. 이 두 부문에서 2차 전지의 역할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세계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에 따르면 파리 협정의 목표에 부합하는 지속가능발전 시나리오(Sustainable Development Scenario)에서는 향후 10년간 전기차의 보급이 현재의 30배 이상 성장하여 2030년에는 2억 4,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배터리 용량도 2030년 연 3,000GWh(기가와트시)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2차 전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전통적인 요소인 품질과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은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세계적 그린 웨이브 속에서 2차 전지의 기회가 확장되는 만큼 위기도 뒤따릅니다. 각국이 녹색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만큼 투자의 성과를 내재화하겠다는 욕심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나 BMW 같은 완성차 회사들도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내비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2차 전지 산업의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더욱 큰 파도는 2차 전지 제품에 결부된 지속가능성에 있습니다. 전기차가 녹색 전환의 핵심인 만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 예로 유럽 그린딜의 하위 전략인 신산업 전략(New Industrial Strategy)을 들 수 있습니다. 아직 전반적인 방향만 제시된 수준이지만 신산업 전략에서는 지속 가능한 스마트 모빌리티 구축을 핵심 요소로 제시하고 지속 가능한 배터리의 규제 프레임워크(Regulatory Framework for Sustainable Batteries)를 수립하여 오는 10월경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서는 배터리의 생산과정의 탄소 집약도(carbon intensity)나 사용 후 폐기 등에 대한 규제가 구체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2차 전지 산업에서의 지속가능성 강화에 대한 잠재적 압박이 커지고 있습니다. LG화학도 완성차 업체로부터 배터리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내용은 이미 여러 번 기사화된 바 있습니다. 2차 전지 산업에서 전통적인 경쟁 요소인 품질, 성능, 가격경쟁력을 넘어 지속가능성의 확대가 새로운 경쟁력의 요소로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4.6%를 차지하여 1위로 도약했습니다. 2차 전지 산업에서 LG화학이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지표로 자랑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지난 7월에는 기후변화 대응, 재생에너지 전환, 자원 선순환 활동, 생태계 보호, 책임 있는 공급망 개발·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지속 가능성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자로서 LG화학이 글로벌 경쟁우위의 원천이 전통적인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의적절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 방향성도 적확하게 설정되었다고 여겨집니다. LG화학의 지속 가능성 전략이 새로운 경쟁우위 창출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속 가능성 부문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EU는 2차 전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관련 규제를 통해 장벽을 쌓을 기세입니다. 최근 BMW가 스웨덴 노스볼트와 20억 유로 규모의 배터리 구매 계약을 맺은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잘 보여줍니다. BMW의 노스볼트와의 계약은 안정적 배터리 공급처 확보 차원의 전략으로 보는 시선이 있으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노스볼트는 배터리 생산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재활용 재료의 사용도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현재 우리의 취약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의 핵심인 온실가스 배출에서 우리나라 2차 전지 산업은 중국보다는 앞서 있으나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습니다. 이를 신속히 해소하지 않으면 2차 전지 산업에서 유럽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습니다. LG화학이 지속가능성 전략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여 글로벌 2차 전지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길 기대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상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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