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일상, 균형 잡힌 삶을 누리기
2019. 10. 17
“집중력이 높은 건지 집착이 심한 건지 일에 푹 빠져 사는 나… 진짜 괜찮은 걸까요?”
저는 7년째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제 삶에 저는 없고, 일 그리고 일하는 A씨(저)만 있더라고요. 사실 꽂히면 한 가지만 들입다 파는 성격을 가진 탓에 진작부터 이런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것이 벌써 7년. 어느 날 무심코 돌아보니 퇴근 후에도 업무 생각을 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집중력이 좋은 건지, 집착이 심한 건지 헷갈리기도 하네요. 저도 일과 일상의 균형 잡힌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잘 사는 게 맞는 건지 걱정되는 A씨
업무 후 계속 일 생각이 난다는 건 회사가 당신의 마음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할 때 몰입해야 일에 대한 집중입니다. 퇴근 후 개인적인 시간에도 일 생각만 난다면 이것은 잡념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주를 이루는 잡념은 뇌를 더 지치게 하고 실제 일을 할 때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만 하다 보면 일이 ‘삶의 무게’로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면 뇌가 방전되는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올 수도 있고요. 삶의 영역, 즉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통해 틈틈이 균형을 잡아줘야 일도 더 가치 있게 느껴지고 성과도 그만큼 더 오르는 법입니다.
물론 일은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생존을 넘어 내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일’ 입니다. 일을 통해 우리는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이고 튼튼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일’이란 단지 경제적 활동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취미, 사회봉사, 종교 등 나와 맞는 내 인생 후반의 일을 통틀어 말합니다. 흔히들 ‘인생은 이모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피곤하더라도 의미 있는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서라면 계속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K씨의 이야기입니다. 퇴직한 K씨는 매일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인생의 큰 행복이라 합니다. 그저 이런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곧 최고의 취미이자 일이 되는 법이지요. 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활동에서의 ‘일’보다 삶의 영역, 즉 내 마음에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꼭 맞는 적성을 찾아 자기계발의 기회를 얻고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합니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이 잘살고 있는 건지 걱정된다고 하셨는데, 물론 잘살고 계신 것이 맞습니다. 처음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춰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 초반부터 너무 일보다 삶에 비중을 두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20대부터 ‘인생 뭐 있어! 행복을 찾자!’라고 판단해버리면 개인과 사회의 발전동력이 약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삶의 영역을 늘려 균형을 잡으면 됩니다. 그러나 삶의 영역을 절대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삶의 활동을 개발하는 데에는 일하는 만큼의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삶의 활동을 개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먼저 내 마음과 데이트를 해야 합니다. 마음과 데이트하며 내 마음이 어디에서 행복 반응을 잘 일으키는지 모니터링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살자’, ‘긍정적으로 살자’라며 마음에 서비스를 달라고 떼를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과의 데이트는 반대로 ‘요즘 어때?’, ‘내가 뭘 하면 행복하겠니?’ 등 온전히 마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 30분, 주 1시간, 분기에 하루 정도는 오롯이 내 마음만을 위한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하지만 마음은 논리적인 언어로는 소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데 디테일은 모두가 다르지만 대체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것 중 하나가 ‘자연’과 ‘문화’입니다.
바람이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뀐 것도 모르고 일에만 몰입한다면 마음이 지치지요. 마음이 지치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왜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마치 오늘 사연처럼 말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성교제 혹은 결혼생활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지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하며 파생되는 생각일 수 있지만, 실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잘 몰랐기에 그러한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데이트하기 좋은 가을입니다. 가벼운 산책을 즐기며 마음과 교감해봅시다. 음악 감상도 힐링에 좋습니다.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음악을 들으며 마치 감성에 젖어보세요.
일을 잘하면 성공적인 생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생존 이후엔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틈틈이 잘 노는 법을 익혀 두시길 바라겠습니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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