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토정비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2016. 01. 07
한 기사에 따르면 매년 12월과 1월 즈음이면 새해 운세를 보기 위해 철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합니다. 새로운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쳐 길한 일은 놓치지 않고, 흉한 일은 잘 피하기 위함이겠죠. 그런데 흔히 사주, 토정비결 등으로 불리며 신년 운을 예측하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믿어도 될까요?
동양인들은 오래 전부터 미래의 운세를 예측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이는 사람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 별의 움직임, 꿈, 손금과 관상 등을 해석해 미래의 운을 알아보려 노력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한문인 ‘갑골문자’도 하늘에 물은 질문과 응답을 새긴 글자였죠.
『주역(周易)』은 미래를 점치는 여러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거의 최초의 책으로, 중국 유교 경전 중 가장 오래된 책이기도 합니다. 우주 만물이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원칙을 주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사에서도 이러한 음양의 이치를 비교, 연구하여 풀이한 『주역』은 ‘연월일시’로 괘를 내는 점복술의 교과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토정 이지함(1517-1578)이 지은 책으로 알려진 『토정비결(土亭祕訣)』은 의학과 점복에 밝았던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봐달라 요구하면서 펴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기본은 『주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48괘로 주역보다 16괘가 적고, 괘를 만들 때 주역의 연, 월, 일, 시 중 ‘시(時)’가 제외되는 등 많은 차이가 있어 조선의 독자적인 점복술을 정리했다고 평가된답니다.
조선 중기에 편찬되긴 했지만 『토정비결』이 민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말엽으로 추정됩니다. 『주역』이 주로 덕을 쌓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토정비결』은 길흉화복에 대한 예측이 주가 되는데요. 정월부터 섣달까지 12달의 운을 각각 4언 3구의 시구로 풀고 있습니다. ‘구설수가 있으니 입을 조심하라’, ‘봄바람에 얼음이 녹으니 봄을 만난 나무로다’와 같이 신문 ‘오늘의 운세’에서 익숙하게 본 조언들의 뿌리가 바로 이 『토정비결』인 거죠.
『토정비결』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며 인기를 얻은 것은 당시 사회상과 관계가 깊어 보입니다. 조선 말, 민초들의 삶이 곤궁의 절정에 달하면서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 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점술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예언을 갈구하던 민심이 『토정비결』의 인기를 몰고 왔고, 지금까지도 정월마다 그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매 년, 매 월, 매 주, 그리고 매일. 우리는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에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토정비결을 찾습니다. 요즘은 모바일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손쉽게 내 운세를 볼 수 있죠. 길한 운은 놓치지 않고, 흉한 운은 피하고 싶은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일 텐데요. 하지만 이에 대한 맹신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토정비결』은 태어난 때에 따라 정해진 운이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기에 운명론적입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고, 무력감이나 허황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죠. 또한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태어난 때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미래를 갖게 되는 오류가 생깁니다. 한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자유의지를 무시한 채 검증 불가능한 확률과 예측으로 쉽게 인생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게 되죠. 따라서 ‘운’이라 불려지는 것들은 일상 속 재미는 될 수 있지만 절대적인 지표로 삼는 데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 미래를 만드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토정비결』 같은 예언서는 그 선택을 위한 참고서 정도로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 뛰어난 행정가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울로 거처를 옮긴 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보내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붙었다고 하네요. 말년에 아산현감으로 부임한 그는 ‘걸인청’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포구는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토정 이지함 테마거리’를 지난해 말 마포구 용강동에 조성했습니다. 이 거리에는 수수한 차림에 패랭이를 쓴 이지함과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민초들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는데요. 2016년 새해에는 이 거리를 걸으며 『토정비결』 보다 더 컸던 토정의 이웃사랑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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