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머 인사이트 #25 버려진 플라스틱! 기술력으로 다시 태어나다, PCR ABS
2020. 09. 16
플라스틱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co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모양을 바꾸거나 본뜰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 인류의 생활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책의 양장 제본에 말가죽과 돼지가죽을 이용했고, 전선 피복에는 쿠타페르카(Gutta-percha) 나무의 수액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재료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코끼리 상아였습니다. 코끼리 상아는 빗이나 피아노 건반, 담배 파이프, 체스 말 등으로 이용됐습니다.
당구공 재료로도 코끼리 상아가 사용되었습니다. 19세기, 당구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스포츠였고 그런 까닭에 코끼리 상아를 찾는 이들 또한 늘어났습니다. 코끼리 상아 1개로 당구공 3개를 만들 수 있었기에 코끼리 한 마리는 당구공 6개로 환산되었습니다. 당구 게임인 폴(Pool)에는 총 16개의 당구공이 필요했습니다. 즉, 당구대 하나를 만드는 데 코끼리 3마리가 필요했던 셈입니다. 코끼리 수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1863년 미국 뉴욕 당구공협회는 상금 1만 달러를 걸고 상아를 대체할 당구공 소재를 찾습니다. 1869년 존 웨슬리 하이엇(John Wesley Hyatt)은 질산섬유를 이용해 최초의 천연수지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개발합니다. 셀룰로이드는 열을 가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충격에 약해, 당구공 재료로는 부족했습니다. 1907년 리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는 석유 부산물에서 최초의 합성수지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를 개발합니다. 이후로 여러 플라스틱이 개발되면서 가전, 가구 등 일상용품과 건축 등 산업용품을 비롯해 인류의 삶 자체가 변화를 맞이합니다. 인류의 지금은 플라스틱 없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널리 쓰이면서 다른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바로, 환경오염입니다.
한 번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미국 우즈홀 해양 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에 따르면 플라스틱 병 하나가 분해되려면 약 45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다로, 자연으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폐기된 자체로 또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아 생물의 대사 작용을 교란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많은 조류와 해양생물 등이 죽어간다는 보고도 잇따릅니다.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플라스틱, 더 이롭게 쓸 수는 없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플라스틱의 재활용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세계 플라스틱 소재 생산량은 연간 3억 4천만 톤에 이릅니다. 이 중에서 재활용 목적으로 수거되는 폐플라스틱 비율은 연간 생산량의 35~40%입니다. 여기서 15~20%는 소재 재활용으로 이용되고 나머지 20~25%는 열처리를 통한 에너지 재활용으로 활용됩니다. 재활용 목적으로 수거되지 않는 60% 정도의 폐플라스틱은 모두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플라스틱 문제가 대두되면서 세계 각국은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먼저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와 하와이주를 비롯해 보스턴, 시카고, 시애틀 등에서 법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봉투의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 외의 주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봉투 사용에 대한 요금이나 세금을 부과하거나 재활용 및 재사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2018년 음료용기, 식기류 등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저감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제로 정책을 비롯해 2019년에는 플라스틱 재순환 및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 장려를 위한 바이오 경제 성장 전략 수립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덴마크 역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2018년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했고 2020년에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관리 강화 조치를 통해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과 판매, 사용을 단계적으로 제한 및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도 역시 2019년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 조치를 했으며 말레이시아 역시 플라스틱 폐기물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재활용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은 크게 기계적, 화학적, 열적 재활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계적 재활용은 수거된 플라스틱을 화학적인 구조 변화 없이 물리적 형태만 변화 시켜 최대한 동일한 플라스틱 원료로 선별한 뒤 재가공하는 방법입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재활용 플라스틱의 분자 구조 자체를 변화해 원료로 재생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결합된 분자 구조를 다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응 및 공정이 까다롭습니다. 특히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처럼 다성분계 구성 물질인 수지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화학적 재활용은 단일 물질로 구성된 PE(Polyethylene), PP(Polypropylene), PS(Polystyrene) 플라스틱에 주로 이용됩니다. 열적 재활용은 열에너지로 회수하는 방법입니다. 재활용 플라스틱에서 발열량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연료의 형태로 이용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PCR ABS 플라스틱은 이런 여러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 중 기계적 재활용으로 생산된 제품입니다.
PCR ABS는 어떤 플라스틱일까요? 먼저, PCR의 뜻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최종 소비자가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플라스틱 소재를 PCR(Post-Consumer Recycled material) 플라스틱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PCR PET를 비롯해 PCR PP, PCR PS 등 다양한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가 생산∙개발되었습니다. 그럼 PCR ABS에서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는 무엇을 뜻할까요? ABS는 아크릴로나이트릴(Acylonitrile)과 부타디엔(Butadiene), 스타이렌(Styrene)의 공중합체입니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충격과 열에 강한 플라스틱이며 다양한 모양과 색상을 가진 플라스틱 원료라 가전제품을 비롯해 사무기기, 자동차 내외장재, 장난감 등 다양한 제품의 소재로 사용됩니다. PCR ABS는 최종 소비자가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다시 ABS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플라스틱을 말합니다.
PCR ABS는 폐가전제품 등 최종 소비자가 사용하고 폐기되어 리사이클링 센터 등으로 회수된 제품을 분쇄하여 제작됩니다. 분쇄로 인해 초기 원료 단계인 펠릿(Pellet) 형태로 만들고, 그 조각을 깨끗하게 세척한 뒤에 비중 차이를 이용해 수침 분리나 원심분리, 적외선 분광법을 이용한 분리, 정전기에 의한 분리 등 다양한 선별∙분리 공정을 거쳐 종류별로 분리됩니다. 이렇게 분리된 재료들은 그 자체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품질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기존 원료와 적당한 비율로 혼합해 최종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원료로 만들어집니다.
일반적인 PCR ABS는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기 용이한 ABS 용도 특성상 여러 색상이 혼합된 펠릿(Pellet) 상태로, 대부분 블랙(Black) 계열의 색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 보니 주로 외관용(예 : 백색가전, 장난감 등)으로,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는 데 사용되는 ABS로 재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이트(White) 색상을 가진 PCR ABS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화이트 색상의 PCR ABS 생산을 위해서는 제품 분쇄 단계 이전부터 밝은 색상의 제품들만 따로 분리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백색 안료를 선택하고 배합하는 등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PCR ABS는 생산될 각 제품에 따라 형태와 디자인, 컬러 등에 맞춰 세부적인 개발을 완료하여 공급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화이트 색상을 유지하고, 재활용되면서 저하된 고유 물성을 기존의 ABS와 동등 수준으로 최대한 맞춰주는 것입니다.
PCR ABS의 연구와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선, PCR ABS 자체의 품질을 더욱 상승시켜서 활용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 단계부터 재사용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분리배출이 쉽도록 제품의 구조나 색상 등이 지정되어야 합니다. 원활한 플라스틱 재사용을 위해서는 이런 세밀한 부분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 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 합의는 정책으로 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을 비롯해 정부, 여러 사회 구성원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다면 PCR ABS를 비롯해 다양한 PCR 플라스틱 제품이 더욱 활발하게 개발될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소재, 플라스틱! PCR 제품으로 재사용하여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다시금 쓸 수 있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의 미래를 살리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감수 : LG화학 석유화학연구소 김서화 책임
찌그러지거나 깨진 탁구공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까운데 이것을 모아 재활용 하여 다른 제품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효나효나님
LG화학 블로그 케피토피아 담당자입니다.
문의주신 내용은 아래 LG화학 홈페이지로 부탁드립니다 :)
https://www.lgchem.com/customerService/faq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