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를 사랑한 남자, 백남준 - LG케미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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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플레이를 사랑한 남자, 백남준

        2016. 07. 08

        1984년 1월 1일, 세계의 시선이 모두 TV 브라운관에 모였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전 세계 곳곳에 방송되었기 때문이죠. 조지 오웰의 작품 ‘1984’ 속 암울한 미래가 아닌, 과학기술로 눈부신 발전과 화합을 이룬 1984년 지구촌의 모습을 아우른 그의 작품은 현재 인터넷 기반의 네트워크 개념을 예견한 퍼포먼스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는데요. 디스플레이를 캔버스 삼아 예술과 과학기술의 조화를 꾀했던 위대한 아티스트, 백남준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의 탄생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콩,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생 시절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던 그는 대학에서도 미술이 아닌 음악을 전공했는데요. 일본 도쿄대에서 주로 작곡과 음악사학을 공부했죠. 이후 1956년 독일에서 유학을 하며 그의 관심사와 활동 반경이 극적으로 넓어졌는데요. 그 계기는 바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장르 간의 벽을 깨고 ‘우연’의 산물로서 작곡을 시도하기도 했던 존 케이지의 파격적인 활동은 백남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 급진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백남준을 보며 화가인 앨런 카프로(Allan Kaprow)는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고 평하기도 했죠.

        (왼쪽부터)존 케이지,백남준, 조셉 보이스ⓒWikimedia.or.kr

        (왼쪽부터)존 케이지,백남준, 요셉 보이스ⓒWikimedia.or.kr

        1960년대 초반에는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등과 합심하여 ‘플럭서스(Fluxus)’를 주도하기도 했는데요. 라틴어로 변화, 흐름, 움직임을 뜻하는 ‘플럭서스’는 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음악, 무대예술, 시각예술, 시 등 장르를 초월한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입니다. 이는 흔히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포스트모더니즘, 행위예술 등에 영향을 주거나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는 등 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답니다.

        아티스트 백남준, 미디어를 주목하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미국에 거주하며 본격적인 미디어 아트 활동을 펼칩니다.

        ⓒm-louis .®, flickr.com

        ⓒm-louis .®, flickr.com

        그는 여러 대의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영상 작품뿐 아니라 조각, 설치는 물론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eman)과의 협연을 통해 음악과 비디오 아트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죠. 1970년대에는 다양한 설치 작품과 그룹전 등을 통해 꾸준히 기술과 예술의 조화를 시도했고, 방송국과 협력하여 본인의 비디오 아트를 공중파 채널에서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은 미디어 아트를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 1984년에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생중계를 전 세계 2천 5백만 명이 시청하게 되었죠.

        디스플레이를 사랑한 남자, 잠들다

        백남준은 90년대까지 다양한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 등을 펼치며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더불어 그는 광주 비엔날레 개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 등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많은 힘을 쏟았는데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 등 대작을 발표하며 미디어 아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2006년 1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뉴욕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은 ‘넥타이는 맬 수도 있고, 자를 수도 있다’는 그의 생전 발언을 기억하며 자신들의 넥타이를 잘라 관 위에 포개 올리며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완성했답니다.

        백남준 작,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Ryan Somma, flickr.com

        백남준 작,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Ryan Somma, flickr.com

        늘 예술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감행했던 위대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그의 10주기를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 백남준∞플럭서스》를 7월 31일까지 개최하는데요. 아방가르드한 1960년대에 싹 튼 미디어 아트의 시작을 살피고,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랍니다.

        전시가 끝나도 백남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와 백남준의 집터인 종로구 창신동에 올해 11월 개관 예정인 ‘백남준 기념관’입니다. 그 동안 백남준 작가와 미디어 아트를 잘 모르거나 어렵다고 느끼셨나요? 그렇다면 그를 추모하며 열리는 다양한 전시와 활동에 참여해 보세요. 생각보다 쉽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그의 미디어 아트 속에서 ‘예술’ 그 이상의 감동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백남준∞플럭서스' 전시 포스터ⓒ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플럭서스’ 전시 포스터ⓒ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경지에 오르다, OLED 디스플레이

        대한민국의 디스플레이 기술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릴 만큼 뛰어난데요. 픽셀 하나하나가 빛을 내는 OLED는 무한대의 명암비와 생생한 컬러 구현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디스플레이라 칭해집니다. 특히 종이처럼 얇은 패널, 우아한 곡선이나 종이처럼 접히는 등의 최신 기술이 등장하며 TV는 물론 스마트폰, 조명 등 디스플레이 전 영역의 신기원을 이루고 있죠.

        초고화질 화면을 구현하는 OLED TV이미지

        ⓒLG화학 홈페이지

        LG화학은 OLED의 핵심소재인 OLED 물질을 통해 초고화질의 화면을 구현하는 데에 기술력을 보태고 있는데요. 빛을 내는 OLED 소자의 공통층 소재인 HIL, HTL, ETL 물질과 발광층 소재인 EML을 생산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LG화학의 힘으로 기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 OLED 디스플레이를 경험해보세요!

         

        *메인 사진 출처: 백남준 作-광합성ⅡⓒRepublic of Korea,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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