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으로 읽는 화학사] Vol.10 수백 가지 향기 속 공식을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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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으로 읽는 화학사] Vol.10 수백 가지 향기 속 공식을 파헤치다!

        2026. 08. 12

        향은 흔히 취향의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시트러스 향, 파우더 향, 우디 향처럼 사람마다 선호하는 향을 기준으로 향수나 화장품, 식음료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향들이 저마다 다른 향을 내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향기’라고 부르는 감각의 이면에는 수많은 화학 물질이 존재합니다. 식물은 여러 종류의 휘발성 물질을 만들어내고, 이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퍼진 뒤 코의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각각 다른 향으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19세기 화학자들에게 식물의 향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난제였습니다. 식물에서 얻는 에센셜 오일(Essential oil)은 꽃과 잎, 껍질, 열매 등에서 추출되는 휘발성 향기 성분의 혼합물로, 여러 유기 화합물이 복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성분 간 성질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각각을 분리하거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같은 성분이라도 오렌지 껍질에서 얻으면 ‘오렌지 오일’, 라벤더에서 얻으면 ‘라벤더 오일’처럼 불리며 서로 다른 물질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향기 성분을 비교적 정교하게 분석하고, 원하는 향을 설계해 조합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어떻게 이 복잡한 향기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일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화학자들을 오랫동안 혼란에 빠뜨렸던 향기 성분의 정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향기 연구를 복잡하게 만든 범인, 테르펜

        테르펜은 아이소프렌(C₅H₈) 단위가 여러 방식으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유기 화합물로, 연결 방식과 개수에 따라 다양한 구조와 향을 나타냅니다. 19세기에는 테르펜의 조성, 분자량, 끓는점이 매우 비슷하면서도 냄새와 반응이 달라 물리적 성질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웠으며, 서로 다른 식물에서 얻었다는 이유로 같거나 유사한 물질에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 당시 문헌에 100여 종까지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산이나 할로젠화수소와 반응하면서 분자 내 결합 위치가 바뀌거나 다른 테르펜 형태로 전환되는 이성질화가 일어나, 처음부터 존재한 성분과 실험 과정에서 생성된 성분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향기 연구에서 화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린 주인공 중 하나가 ‘테르펜(Terpene)’입니다. 테르펜은 여러 에센셜 오일 속에 들어 있는 향기 성분으로, 식물 특유의 향을 만드는 주요 물질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 테르펜이 하나의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구조가 비슷한 성분들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했고,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성질도 서로 유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분자량이나 끓는점은 거의 같지만 향은 전혀 달라, 어떤 것은 상쾌한 레몬 향을 내는 반면 또 다른 것은 소나무처럼 묵직한 향을 풍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혼란을 더한 것은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화학자들은 새로운 향기 물질을 발견할 때마다 식물 이름이나 특징을 따서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습니다. 테르펜(테레빈유), 캄펜(장뇌), 시트렌(감귤류), 카르벤(캐러웨이 오일), 유칼립틴(유칼립투스)처럼 성격이 비슷한 물질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문헌에도 각각 별개의 테르펜으로 기록되곤 했습니다.

        테르펜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도 연구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실험 과정에서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원래 분석하려던 물질이 다른 구조로 바뀌는 이성질화가 쉽게 일어났습니다. 즉, 연구하는 과정 자체가 물질의 성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비슷한 물질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고, 이름도 제각각인 데다 실험 도중 구조까지 변해버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테르펜은 당시 화학자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연구 대상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역사와 예술을 좋아하던 한 학생이 대학에서 화학을 접한 지 불과 5학기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놀라운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긴 연구 끝에 이 복잡한 향기의 비밀을 풀어냈죠. 바로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오토 발라흐(Otto Wallach)입니다.

         

        역사와 예술을 좋아하던 소년, 화학자가 되다

         

        발라흐는 1847년, 철학자 칸트가 평생을 보낸 도시로 알려진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학교 교육에서는 화학을 깊이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그는 철학과 문학, 예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1867년 괴팅겐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뵐러(Friedrich Wöhler), 한스 휘브너(Hans Hübner) 같은 당대 화학자들에게 배우며 점차 화학의 세계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후 베를린에서도 연구 경험을 쌓은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공부를 이어가 1869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대학교에서 유기 화학의 거장 아우구스트 케쿨레(August Kekulé)의 지도 아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염료와 다양한 유기 화합물을 다루며 경험을 쌓아가던 그는 이 시기에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어느 날 케쿨레는 연구실 한쪽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에센셜 오일 병들을 꺼내 발라흐에게 보여주며, 그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분석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연구실 구석에 놓여 있던 오래된 오일병이 훗날 발라흐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집념의 화학자 발라흐 vs 예민한 물질 테르펜

        발라흐는 수많은 에센셜 오일과 제각각의 이름으로 기록된 테르펜을 체계화하기 위해 분리·비교·반응·변화 추적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복잡한 혼합물을 반복 증류와 재분리해 성분별로 나누고, 끓는점과 여러 물리적 성질을 비교한 뒤 HCl, HBr 등의 시약과 반응시켜 물질 간 차이를 확인했습니다. 또한 실험 중 테르펜이 다른 형태로 변하는 조건까지 추적하며 결과를 지속적으로 대조해 동일한 성분을 가려냈고, 이를 바탕으로 복잡하게 기록되던 테르펜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발라흐는 1884년부터 에센셜 오일과 테르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가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혼합물을 분리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테르펜은 조성과 분자량, 끓는점이 서로 비슷한 경우가 많았고, 흔히 사용되는 시약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구조가 바뀌는 이성질화가 쉽게 일어났습니다. 발라흐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물질이 변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동시에,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각각의 성분을 구별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그는 먼저 복잡한 에센셜 오일을 반복적으로 증류하고 재분리해 성분별로 나누었습니다. 한 번의 실험으로 결론을 내리는 대신, 여러 차례 성분을 나누고 비교하며 점차 순수한 성분으로 좁혀 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어 물리적 성질뿐 아니라 화학 반응까지 함께 비교했습니다. 염화수소(HCl), 브로민화수소(HBr) 등의 시약을 이용해 각 물질이 보이는 반응의 차이를 관찰했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성분들 사이의 구별 기준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하며 작은 차이까지 빠짐없이 기록했고, 모든 결과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서로 다른 식물에서 얻어져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물질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같은 테르펜이었던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던 향기 성분들이 사실은 몇 가지 기본 구조에서 변형된 물질이었던 것이죠.

        발라흐는 각 테르펜을 구별하는 기준을 세우고, 혼합물 속에서도 특정 성분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이성질화가 일어나는 조건을 함께 분석해 실험의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다시 말해, 분석 과정에서 물질 자체가 달라지지 않도록 실험 방법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은 것입니다.

         

        에센셜 오일 연구의 끝에서 탄소 원자 구조를 정리하다!

        탄소 구조는 분자 안에서 탄소 원자들이 연결된 순서와 모양을 뜻하며, 연결 방식에 따라 곧은 사슬, 가지가 뻗은 사슬, 고리 등 다양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지환족 화합물은 탄소 원자가 고리 모양으로 연결된 화합물 가운데 벤젠과 같은 방향족 화합물을 제외한 물질을 의미합니다. 테르펜에는 사슬형과 고리형 구조가 모두 존재하며, 발라흐는 특히 고리형 테르펜의 연결 방식과 반응·변화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테르펜을 분리하고 분류하는 데서 출발한 발라흐의 관심은 점차 화합물의 결합 구조로 확장되었습니다.

        그가 집중한 것은 테르펜과 장뇌 같은 물질에서 나타나는 탄소 연결 방식이었습니다. 고리 구조 자체는 이미 벤젠 연구 등을 통해 일부 알려져 있었지만, 이러한 구조가 다양한 천연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발라흐는 여러 반응 실험과 분리 과정을 반복하며 테르펜 계열 화합물들의 구조적 공통점과 차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습니다.

        이 같은 연구가 축적되면서 19세기 말에는 탄소 원자들이 고리처럼 연결된 유기 화합물 가운데, 벤젠과 같은 방향족 화합물과 구별되는 비방향족 고리 화합물을 ‘지환족 화합물(Alicyclic compound)’이라 부르며 하나의 연구 분야로 정리하게 됩니다. 이 개념은 발라흐를 비롯한 여러 화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며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테르펜이 지환족 화합물인 것은 아니며, 고리 없이 사슬 구조를 가진 테르펜도 존재합니다.

        발라흐는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지환족 화합물 연구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이후 이 분야는 의약품 분자 구조 이해, 고분자 소재 연구 등 다양한 유기화학 분야로 발전하게 됩니다.

         

        제 10회 노벨화학상 수상자, 오토 발라흐

        제 10회 노벨화학상 수상자, 오토 발라흐

        1910년, 오토 발라흐는 지환족 화합물 분야의 선구적 연구를 통해 유기화학과 화학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성과는 복잡하게 뒤섞여 있던 화합물을 분석하는 방법을 확립하고, 테르펜을 체계적으로 분류했으며, 관련 화합물의 구조와 반응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데 있습니다. 당시 다양한 형태로 알려져 있던 테르펜을 몇 가지 기본 유형으로 정리했고, 이는 복잡한 정보를 하나의 체계로 묶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1880년대부터 진행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약 600쪽에 이르는 저서 『Terpene und Campher』를 1909년에 출간했습니다. 발라흐는 연구 성과에 대해 특허를 내지 않고 이를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으며, 그의 연구실에서 배운 제자들은 화학 산업 현장으로 진출해 그의 방법론을 확산시켰습니다.

        노벨위원회는 향기 성분 연구에서 출발한 그의 업적이 유기화학의 중요한 한 분야를 발전시키고, 화학 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습니다.

         

        향료 연구가 100년 뒤 소재 연구로 닿기까지

         

        향수와 식품, 화장품에 사용되는 에센셜 오일은 어떤 식물에서 추출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따라 향과 품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발라흐의 연구 이후 에센셜 오일의 품질 관리와 향료 원료의 표준화가 가능해지면서 독일의 향수·식품·향료 등 관련 산업의 생산 규모는 1885년 연간 약 1,200만 마르크 수준에서 이후 약 4,500만~5,000만 마르크 규모로 약 4배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또한 발라흐가 정리한 지환족 화합물의 개념은 이후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습니다. 의약품 분자 설계, 고분자 소재 연구 등에서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대표적인 지환족 화합물인 사이클로헥산(cyclohexane)은 나일론과 같은 합성 섬유의 원료로 활용되는 등 산업 화학에서 핵심 중간체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승의 제안으로 시작된 발라흐의 에센셜 오일 연구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향료 산업과 의약, 소재 화학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발라흐의 삶을 돌아보면, 과학의 발견이나 인생의 방향이 처음부터 계획된 직선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던 한 학생이 화학을 만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접한 에센셜 오일 연구가 그의 대표 업적이 되었습니다. 발라흐의 이야기는 사람의 재능과 길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기보다, 뜻밖의 순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향료 연구를 향했던 발라흐의 긴 여정처럼 우리의 인생도 각자의 재능을 찾아가거나, 혹은 그 쓰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본 콘텐츠에 사용된 이미지의 일부는 AI로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노벨화학상 공식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10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Otto-Wallach

        -독일 국립과학아카데미’Leopoldina’ https://www.leopoldina.org/mitglieder/mitgliederverzeichnis/detail/otto-wallach


        노벨상으로 읽는 화학사

        이 시리즈는 세상을 빛낸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화학이 만들어온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 속에서 함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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