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으로 읽는 화학사] Vol.7 미생물 없이 발효를 해내다, 효소의 반전!
2026. 07. 02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발효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곡물을 반죽해 빵을 만들고, 과일과 곡물을 발효시켜 술을 빚었으며, 김치와 치즈, 간장과 요구르트 등 다양한 발효 식품을 만들어왔습니다. 발효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인류의 식생활을 지탱해온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발효를 ‘활용’할 뿐, 그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눈앞에서는 분명 변화가 일어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오래된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생명과 화학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발효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한 화학자의 연구가 있었습니다.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chner)’의 이야기입니다.
발효는 미생물이 당과 같은 유기물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알코올, 유기산, 이산화탄소 등을 생성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빵, 와인, 맥주, 김치 역시 모두 이러한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술이 만들어지는 것도 모두 ‘효모’의 활동 덕분입니다. 효모는 살아 있는 미생물로, 당을 분해하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합니다. 반죽 속에 갇힌 이산화탄소는 빵을 부풀게 하고, 알코올은 다양한 발효 식품과 음료 특유의 풍미를 형성합니다.
그렇다면 ‘효소’는 무엇일까요?
효소는 효모와 같은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생체 촉매(Biocatalyst)’입니다. 특정 화학 반응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며, 효모가 하나의 살아 있는 세포라면 효소는 그 안에서 실제 반응을 일으키는 ‘작동 부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도 ‘효소’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습니다. 침이나 위액처럼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물질이 특정 화학 반응을 촉진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죠.
하지만 발효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생명체에는 일반적인 화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힘이 존재한다는 ‘생기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발효가 ‘효모’와 같은 미생물의 활동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발효는 오랫동안 살아 있는 세포에서만 가능한 ‘생명 활동’으로 여겨졌습니다.
1860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부흐너는 어린 시절부터 순탄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화학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식품이 저장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발효 현상을 가까이에서 접했고, 이는 훗날 그의 연구 주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뮌헨대학교에서 화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그는, 인디고 합성으로 제5회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아돌프 폰 바이어 밑에서 유기화학을 배우며 연구자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킬 대학교와 베를린 농업대학 등 여러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며 자신의 연구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의 관심은 생명과 화학이 만나는 지점으로 향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했지만 그 원리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던 ‘발효’는 당시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부흐너는 이 의문의 현상을 화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부흐너는 효모 내 발효의 주체를 분리해내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효모를 석영 모래와 함께 갈아 세포를 물리적으로 파쇄한 뒤, 강한 압력을 가해 세포 내부의 액체만 추출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액체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세포를 포함하지 않는, 일종의 ‘세포 추출액’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 액체는 생명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발효가 일어난다면, 발효의 원인이 살아 있는 세포 자체가 아니라 세포 안의 어떤 화학적 반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추출액이 쉽게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흔히 쓰이던 천연 보존제인 설탕을 첨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효모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기포가 발생하며 발효가 진행된 것입니다. 분석 결과 설탕은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고 있었으며, 이는 일반적인 알코올 발효와 동일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발효를 일으키는 주체가 세포 자체가 아니라, 세포 안에 존재하는 특정 물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이 물질의 집합을 ‘치마아제(Zymase)’라고 이름 붙였고, 이것이 살아 있는 세포 없어도 발효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1897년에 발표된 부흐너의 연구는 당시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발효가 세포의 생명 활동 자체가 아니라 특정 물질에 의해 촉진되는 화학 반응임을 증명하며, 당대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생기론’을 뒤집은 것입니다.
부흐너의 연구는 이러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생명 현상 역시 특정 물질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라면, 그 물질을 분리해 연구하고, 반응을 조절하거나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다양한 효소를 분리하고, 각각이 어떤 반응을 얼마나 빠르게 촉진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부터 근육이 움직이고 세포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까지 생명 현상을 모두 화학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세제 속 효소,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드는 발효 기술, 의약품 생산에 활용되는 바이오 공정 역시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1907년 부흐너는 ‘생화학 연구와 세포 없는 발효의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연구가 발효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시한 데 그치지 않고, 생명 현상을 화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의 발견 이후 효소 연구는 빠르게 발전했고, 생명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 반응을 분석하는 생화학은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부흐너가 밝혀낸 효소의 역할은 오늘날 다양한 산업에서 실제 생산 공정을 움직이는 핵심 기술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효소는 특정 물질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생체 촉매’로, 높은 온도나 강한 화학약품 없이도 원하는 물질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덕분에 효소를 이용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보다 정밀한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의약품 분야에서는 효소와 미생물을 이용해 인슐린, 백신, 항체 의약품 같은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합니다. 과거에는 동물에서 추출하던 물질도 이제는 미생물의 효소 반응을 이용해 더욱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산업 현장에서도 효소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제에는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가 포함되어 있어 낮은 온도에서도 뛰어난 세정 효과를 발휘하며, 섬유와 종이 제조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성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해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환경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원리를 더욱 발전시켜, 특정 미생물에 원하는 효소를 만들어내도록 설계한 뒤 이를 활용해 단백질이나 기능성 물질을 생산하는 정밀 발효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식물성 대체 단백질, 바이오 플라스틱, 친환경 화학 소재 등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부흐너의 발견은 “생명체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여겨졌던 반응을 실험실과 공장으로 끌어낸 사건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효소를 이용해 식품부터 의약품, 친환경 소재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2회 노벨 화학상 수상자 에밀 피셔가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 역시 일반 화학물질임을 밝혀 생명을 ‘분자’로 이해하게 만들었다면,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 생명 역시 ‘화학 반응’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생명’을 화학자의 시선으로 탐구하며, 이를 논리와 이론으로 설명해냈습니다. 그 결과 생명과 화학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인류는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더 나은 인류의 삶을 위하여 현대의 ‘상식’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 본 콘텐츠에 사용된 이미지의 일부는 AI로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노벨화학상 공식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07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duard-Buchner
-Wuerzburg 대학교 홈페이지 https://www.uni-wuerzburg.de/en/uniarchiv/personalities/eminent-scholars/eduard-buchner/
이 시리즈는 세상을 빛낸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화학이 만들어온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 속에서 함께 살펴봅니다.
원소로 보는 화학사 바로가기 👉️ https://blog.lgchem.com/2017/05/원소로-보는-화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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