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이 바꾼 현대사] Vol.4 아르곤의 등장, 비활성 기체를 발견하다
2026. 04. 03
H, Li, Be, B, C, N… 학창 시절, 주기율표를 외우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노래처럼 순서를 외우기도 하고, 빈칸을 채우며 원소 기호를 반복해 적어보던 경험, 다들 있으시죠?
LG케미토피아의 인기 콘텐츠, ‘원소로 보는 화학사’에서는 원소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과학자들은 이를 하나씩 밝혀내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넓혀 왔습니다. 그리고 이 원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주기율표입니다.
주기율표는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가 1869년, 원소의 규칙성을 바탕으로 정리한 표로, 자연계에 존재하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원소를 원자번호와 화학적 특성에 따라 배열한 것입니다. 그는 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의 존재를 고려해 일부 자리를 비워두었고, 이는 이후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하나씩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워나간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윌리엄 램지(William Ramsay)입니다. 그는 주기율표의 새로운 한 족(Group), 즉 하나의 열을 이루는 원소들을 찾아내며 화학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램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게 되었을까요?
당대 과학자들은 공기의 주요 성분이 질소와 산소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공기는 질소와 산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혼합기체로 받아들여졌고, 그 안에 새로운 원소가 발견될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실험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가 관측됩니다. 공기에서 분리한 질소와, 화학 반응을 통해 만든 질소의 밀도가 서로 다르게 측정된 것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수치 오차로 보기 어려울 만큼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측정 방법을 바꿔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화학자 윌리엄 램지입니다. 램지는 영국의 물리학자 레일리 경(John William Strutt, Lord Rayleigh)과 함께 공기 속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존재할 가능성에 주목했고,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이 연구는 결국 1904년, 같은 해 두 개의 노벨상으로 이어집니다. 레일리 경은 기체의 밀도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작은 밀도의 차이가 새로운 원소 발견의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1894년, 램지는 공기 속 성분 가운데 반응하는 물질을 하나씩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그 결과, 어떤 조건에서도 반응하지 않고 끝까지 남는 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분리해낸 원소는 높은 온도나 다른 물질과 혼합하는 등 다양한 화학적 조건에서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공기 중에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램지는 반응하지 않는 특성을 바탕으로 이 기체에 ‘활동하지 않는’, ‘반응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argos에서 유래한 ‘아르곤(Argo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르곤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은 오늘날 희가스(Noble gas), 즉 비활성 기체라고 부릅니다.
이 발견은 화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원소는 다른 물질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준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반응성이 매우 낮은 원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램지는 아르곤 발견 이후에도 기체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광물에서 방출되는 기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헬륨은 1868년 태양 관측 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원소로, 당시 지구에서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태양의 원소’, 태양 스펙트럼에서만 존재가 알려져 있었죠. 그런데 램지는 우라늄 광물인 클레베아이트(Cleveite)에서 방출되는 기체를 분석해, 그 기체가 헬륨과 동일한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각 원소는 에너지를 받을 때 고유한 스펙트럼을 갖습니다. 램지는 클레베아이트에서 나온 기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헬륨 특유의 노란색 선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그 기체가 헬륨임을 밝혀냈습니다. 헬륨이 지구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죠.
이는 화학과 천문학의 연결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자, 인간이 이해하는 물질 세계의 범위를 확장한 발견이었습니다.
램지는 아르곤과 헬륨에 이어 네온, 크립톤, 제논까지 연이어 발견하며, 이 원소들이 공통적으로 화학 반응성이 매우 낮은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나아가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이들을 하나의 원소군으로 묶어 정리하며, 기존 주기율표에 없던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습니다.
주기율표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과학자들의 연구가 축적되며 조금씩 완성되어 왔습니다. 하나의 원소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발견을 넘어, 그 성질과 위치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램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18족 원소 7개 중 5개를 직접 발견하며, 특정 원소군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중요한 성과를 남겼습니다.
이후 18족 원소에는 방사성 원소 라돈과 인공 원소 오가네손이 추가되며 그 구성이 완성되었습니다. 라돈은 자연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기체로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 특성이 규명되었으며, 오가네손은 2016년 러시아의 핵물리학자 유리 오가네시안(Yuri Oganessian)이 이끄는 연구진에 의해 인공적으로 합성된 원소입니다. 이처럼 이후의 발견이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비교하면, 램지가 남긴 성과는 한 시대의 흐름을 단숨에 바꾼 사례로 평가됩니다.
윌리엄 램지는 공기 중 새로운 기체 원소를 발견하고, 자연계의 비활성 기체 대부분 밝혀낸 공로로 190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램지의 연구는 원소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원소의 성질을 반응성을 중심으로 이해하던 기존 방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자 구조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과학자들은 일부 원소가 거의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 내부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자 배열과 전자껍질 개념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후 원자 모형과 양자역학의 발전을 통해 이러한 안정성은 이론적으로 설명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비활성 기체의 존재는 화학 반응의 범위를 다시 정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이들은 ‘반응하지 않는 원소’로 여겨졌지만, 후속 연구를 통해 특정 조건에서는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화학 결합에 대한 이해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활성 기체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산업용 가스로서 공정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오늘날 산업이 더욱 정밀한 공정을 요구하게 되면서, 원치 않는 반응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가 제품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하나 환경 제어 역할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산업 현장에서 비활성 기체는 산화나 오염, 불필요한 화학 반응을 차단하는 환경을 형성하며, 공정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예를 들어 아르곤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외부 산소나 수분이 공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반응 가능성을 낮추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금속 용접 과정에서는 고온에서 금속 표면의 산화를 방지해 보다 안정적인 작업 조건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반도체 공정이나 배터리 공정처럼 미세한 불순물도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환경 제어’ 자체가 곧 품질과 수율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이처럼 오늘날 비활성 기체의 가치는 원소 자체의 특성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외부 반응을 최소화하고 공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비활성 기체는 반도체, 배터리 등 정밀 공정 기반 산업의 품질과 생산 수율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견과 발명은 인류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한 걸음씩 밝혀 온 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자들은 그 구성 요소를 하나씩 규명해 나가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넓혀 왔습니다.
윌리엄 램지의 연구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 있습니다. 공기 속의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고 추적한 끝에 새로운 원소들을 발견했고, 주기율표의 한 족 전체를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발견을 넘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확장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공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낸 이 발견은, 과학자의 질문과 집념이 세계를 어떻게 다시 정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 본 콘텐츠에 사용된 이미지는 AI로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노벨화학상 공식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04/summary/
-Science History Institute https://www.sciencehistory.org/education/scientific-biographies/william-ramsay/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William-Ramsay
화학이 바꾼 현대사
이 시리즈는 세상을 빛낸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화학이 만들어온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 속에서 함께 살펴봅니다.
원소로 보는 화학사 바로가기 👉️ https://blog.lgchem.com/2017/05/원소로-보는-화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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