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플라스틱 순환 경제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요 : 홍수열 박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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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stainability

        그건 플라스틱 순환 경제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요

        2025. 03. 21

        “똥糞의 한자를 살펴보면 쌀米의 다른 모습이라는 해석이 됩니다. 똥은 쌀과 다르지 않다는 뜻인데요. 똥은 벼의 거름이 되고, 벼는 쌀이 되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 다시 똥이 됩니다. 생태계의 경이로운 물질 순환입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하 홍수열 소장)은 순환 경제가 결국 생태계의 흐름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연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시 순환하며 새로운 자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쓰레기도 산업 원료가 되어 다시 경제 시스템 안에서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쓰레기가 순환되지 않고 방치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 같은 단순한 대답 대신 ‘어떤 쓰레기가 가장 큰 문제인지’, ‘플라스틱 기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지’까지 실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는 한 소설에서 “산처럼 쌓인 쓰레기는 언제나 고장 난 문명의 신호다”라고 했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계속해서 쌓이는 쓰레기를 해결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신이 버리는 그것, 진짜 쓰레기인가?’

        순환 경제 개념은 1966년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 처음 제안한 이후 발전해 왔습니다. 핵심은 자연 생태계의 물질 흐름처럼, 인간의 경제 체계 내에서도 자원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자체를 최소화된’ 순환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생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홍수열 소장은 강조합니다.
        이제는 생산자의 실질적인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생산자에게 요구될 제품 생산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품을 만들 때부터 재사용과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을 수리해서 오래 사용할 권리,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를 새로운 소비자의 권리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제품을 생산할 때 반드시 재생 원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미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점점 늘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플라스틱 제품의 재생 원료 의무 사용 비율을 30%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홍수열 소장은 이제 생산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절실하게 느껴야 할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재생 원료 공급이 부족하면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생산 차질이 생기며, 품질 저하로 인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총체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순환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보는 것보다 세세한 사안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수천 가지 물질이 재활용되어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도록 촘촘하고 정교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플라스틱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6%가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플라스틱 생산자들이 재생할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동안,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던 정유업체들이 직접 플라스틱 생산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의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증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홍수열 소장은 플라스틱 문제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의 규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역과 기업 경쟁력의 문제도 깊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플라스틱 문제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산업 구조의 재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산유국과 선진국들은 플라스틱 산업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재편하며, 결국 자신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홍수열 소장은 국제 협약을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전체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규제 프레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를 시행하려면 유해성과 관련된 과학적 근거를 명확히 수립해야 하며,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활용 산업의 프레임을 바꿔라!

        플라스틱은 경제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난 물질이며, 본질적으로 문제의 원인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회용 비닐봉지도 종이봉투를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플라스틱 건반은 피아노 건반을 만들기 위해 상아를 빼앗겼던 수많은 코끼리를 살렸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요?

        홍수열 소장은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을 최대한 줄이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생분해가 잘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플라스틱 기업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석유 기반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바이오 플라스틱의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원료 조달 설루션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 산업 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재생 원료 공급을 늘려서 천연 원료 사용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하지만 산업에 필요한 재생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몇 가지 선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플라스틱 재활용은 주로 영세한 중소기업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고품질 신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재생 원료 공급이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재생 원료와 바이오 플라스틱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석유화학 업체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이며, 중소 재활용 업체와 대기업 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는 비용이 수반되기 마련이므로,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현재 플라스틱을 둘러싸고 생산과 유통, 기업과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홍수열 소장은 이럴 때일수록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 신재(Virgin Plastic) :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를 결합해 만든 플라스틱

        순환 경제도 결국은 디테일의 문제

        순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은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생산과 유통, 소비와 폐기의 구체적인 흐름에서 세부적인 물질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통계와 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홍수열 소장은 칼국숫집과 통영의 굴 양식장에서 나오는 조개껍데기 사례를 들며 설명합니다. 조개껍데기는 탄산칼슘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지만,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오히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폐기물이 됩니다. 사실 조개껍데기는 시멘트 제조와 플라스틱 제조에서도 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원들이 버려지는 이유는, 이를 체계적으로 수거하고 가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처럼 수많은 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재활용될 수 있는지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홍수열 소장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순환 경제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누군가가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을 제안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방향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내놓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논의가 오가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실질적인 설루션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담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손자병법> 작전 편에 ‘교지졸속(巧遲拙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완벽한 전략을 세우는 것에 집착하다가 때를 놓치는 것보다는, 전략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홍수열 소장은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현실에 기반한 적극적인 실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순환 경제는 ‘오래된 새것’입니다. 이탈리아의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고 했어요.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면 쓰레기 문제의 전망은 비관적입니다. 기후 위기나 미세 플라스틱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이 과연 변할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느리지만 분명히 변하고 있습니다. 홍수열 소장은 순환 경제야말로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부합하는 디지털 뉴딜 과제라는 확신이 든다고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했습니다.

        “사람마다 변화의 속도는 다를 수 있겠죠. 저는 온건한 합리주의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원칙론적인, 강경한 주장만 하다 보면 결국 사람을 미워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이 문제는 모두가 연대해야만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 너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한 걸음 앞선 실천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어요.”


        순환 경제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닙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자원이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산자, 소비자, 기업, 정부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해법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실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작은 변화가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현실적인 변화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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