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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이야기

봄날에 찾아간 아침고요수목원

2016년 4월 1일

따뜻한 봄기운을 실은 바람이 불자 어느덧 초록 기운이 조금씩 몸을 세우는 요즘입니다. 봄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역시 숲으로, 산으로 향해야 하는 법! 이번에는 블로그지기와 함께 LG화학인 2명이 조금 이른 봄날에 경기도 가평을 찾았습니다. 한국적인 자연의 미를 온전히 품고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의 설립자인 한상경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인데요. 굽이 굽이 펼쳐진 수목원 곳곳에는 조금씩 봄이 피어남을 알 수 있었답니다.

아침고요수목원의 평화로운 전경

아침고요수목원의 평화로운 전경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속에 이미 피어 있기 때문이다.

한상경 교수를 만나자 그는 그의 시 ‘나의 꽃’을 읊었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나의 꽃이자, 나 또한 누군가의 꽃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시를 읊는 한상경 교수. 나주공장에서 온 유효상 대리, 오창공장에서 온 이승형 사원은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은 오늘이 어떤 향기로 기억되어질까요?  고요한 울림을 주는 한상경 교수의 이야기를 만나볼게요.

 

이렇게 넓고 잘 가꿔진 수목원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수목원을 설립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상경 교수 젊은 시절, 전 농대를 졸업하고 농촌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원예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에는 농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지요.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흙을 향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육대학교 3대 학장을 역임하신 김종화 박사님께서 저를 찾아왔어요. ‘교육사업을 위해 평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느냐’고 물으셨죠. 전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늘 농촌을 위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거든요. 제 얘기를 듣던 김 박사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당신이 그 꿈을 이룰 수도 있지만, 교육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상의 것을 이뤄낼 수 있다’고요.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좌) 이승형 사원, (우) 유효상 대리

(좌) 이승형 사원, (우) 유효상 대리

이후로 제 강의는 ‘흙으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이어졌죠. 제자들과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약 7천평의 과수원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자들도 졸업 후에는 흙으로 돌아가지는 않더라고요.(웃음) 흙을 위해 산다는 것은 시나 노래에서 아름다운 것이지 내 가족이, 내 자식이 그리 사는 것은 싫었던 모양이에요. 이후엔 많은 고뇌가 저를 괴롭혔어요. 교수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이후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정원을 찾아 다녔죠. 그것이 원예학자인 제겐 학습이자 연구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캐나다에서는 부차드가든(Butchant Gardens)을 보게 되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에도 그런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죠.

 

수목원 설립 당시 어려운 점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한상경 교수 아침고요수목원을 설립해야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는 여러 기업들을 찾아 다니며 이 사업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제 꿈을 기업의 힘을 빌어 이루려다 보니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힘으로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죠. 젊어서부터 참 사고뭉치였어요. 무엇 하나에 생각이 꽂히면 무모하리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거든요. 그런 제 성격 때문에 아내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평범한 교수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사람인데, 수목원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무엇이 좋았겠어요.

실내 수목원에서 인터뷰 중인 세 사람

실내 수목원에서도 이어진 인터뷰

있는 재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땅을 알아보러 다녔는데,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죠. 땅을 선정하는 것도 굉장히 고민해야 했어요. 부차드가든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한국의 정원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위치 선정도 매우 중요했거든요.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니까 우선은 서울과 가까워야 세계인들에게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출발해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지금 이 자리가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삶을 떠올리시며 ‘무모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침고요수목원말고 또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한상경 교수 이런 이야기는 마치 제가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잘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올바른 입양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아침고요둥지복지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어요. 예전에 제자들과 어느 마을에 봉사활동을 갔었는데, 그 곳에서 한 청년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어린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작은 복지시설이더라고요.

열 셀 동안 쓰레기를 다 주우라는 청년의 말에 황급히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을 보니 무척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우리도 이 다음에 입양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을 했고, 아내는 흔쾌히 동의해주었죠. 하지만 사는 게 바쁘다 보니 그 뒤로는 그 다짐을 까맣게 잊고 살았어요. 그래서 복지회를 설립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목원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거니는 세 사람

수목원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교수님께서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착이 많으신 분 같아요. LG화학 임직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상경 교수 ‘나의 꽃’이라는 시를 읊어드렸었는데, 아침고요수목원에도 그 시가 담긴 푯말을 설치해놨어요. 그 이유는 이곳을 찾는 많은 분들 각자가 누군가의 꽃이고, 또 그 주변의 사람들도 각자의 꽃으로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여러분 회사의 동료들, 선배들, 그리고 임원들을 나의 꽃이라는 생각으로 대하며 생활하세요. 나와 함께 한 목표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서로를 경쟁상대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 생각하면 불행해집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분명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동료들은 한 회사를 함께 이끌어가는 조력자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마세요. 내 주위의 소중한 존재들을 매일매일 꽃에 물을 주듯 살피며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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