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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이야기

미술과 화학의 케미, 미술 속 숨은 화학 찾기

2015년 4월 22일

미술관을 거니는 사람들의 눈빛이 촉촉합니다. 명화 감상에 푹 빠진 모습인데요. 사실 미술관이 거대한 화학 실험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깜짝 놀라겠죠? ‘미술’과 ‘화학’이라니, 미녀와 야수처럼 영 안 어울리지만요. 화학이 없었다면 미술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둘 사이에 어떤 끈끈한 인연이 있는지, 한번 파헤쳐볼까요?


미술 역사 속 화학,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여러분은 어떤 색을 좋아하나요? 아름다운 색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인간의 본능인데요. 지금처럼 다양한 색깔을 만들기 힘들었던 고대와 중세에는, 색이 곧 권위며 부의 상징이었지요. 사람들은 식물 등에서 색을 얻는 천연염료, 숯이나 황토 등의 광물성 안료에서 점차 코치닐 등의 동물성 화학염료까지 발전해 나갔어요.

(좌) 윌리엄 퍼킨, (우) 모브 명칭의 유래가 된 보라색 꽃

(좌) 윌리엄 퍼킨, (우) 모브 명칭의 유래가 된 보라색 꽃ⓒwikipedia.org

기원전 12세기에 고대 페키니아인들은 단 1그램의 ‘퍼플레드’ 색소를 얻기 위해 2만여 마리의 달팽이를 희생시켰어요. 이렇게 귀한 보라색을 인공염료로 개발해 수많은 달팽이들이 목숨을 건진 사람은, 영국의 윌리엄 퍼킨(William Henry Perkin)입니다. 1856년, 10대 소년 퍼킨은 화학자의 실험조수였는데요. 말라리아 치료약을 합성하려다 우연히 보랏빛 염료를 얻게 되었죠. 모브(Mauve)라 이름 붙여진 이것은 최초의 합성염료로, 오늘날 염료공업의 시발점이 되었죠. 그리고 이 보라색은 현재 수채화용 그림물감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화학이 새로 쓴 미술사 – 유화의 탄생

반짝이는 광택, 풍부한 색감, 손에 잡힐 듯한 입체감까지… 유화의 매력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래 보존된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데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화들이 수백 년을 버텨온 힘은 바로 유화이기 때문입니다. 유화물감은 증발이 아니라 기름의 산화에 의해서 천천히 굳어지지요. 산화할 때의 화학반응으로 결합된 그림은 아주 견고해요. 그 덕에 우리는 수 세기 전의 그림을 지금까지 즐길 수 있는데요, 이 유화의 창시자는 과연 누구일까요?캔버스에 굳어진 다양한 색의 유화물감그는 바로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입니다. 유럽 북부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누구나 미술책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렸지요. 에이크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인 ‘아마인유’를 사용했는데요. 그로 인해 예전과 달리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답니다. 아득하게 먼 1400년대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유화물감에는 아마인유가 들어 있어요. 녹는 점이 낮은 불포화지방산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포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합니다. 유화는 화학작용으로 빚어진 예술이라는 사실, 이제 아시겠죠?

(좌) 얀 반 에이크, (우)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

(좌) 얀 반 에이크, (우)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wikipedia.org

다빈치가 화학자였다면? ‘최후의 만찬’은 끝나지 않았을 것!

그렇다면 유화가 발명되기 전에 화가들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을까요? 정답은 ‘계란 노른자’ 랍니다. 화가들은 계란이나 아교, 벌꿀, 무화과나무의 수액 등을 용매로 삼아 색채가루인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들었죠. 이것을 템페라(Tempera)라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 관이나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 등, 고대와 중세에는 주로 템페라를 이용했어요. 빨리 마르는 성질의 템페라는 균열이 일어나기 쉬워 보존이 어려웠지요.템페라에 이용된 계란 노른자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은, 유화에 템페라 기법을 섞어 완성된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것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계란노른자의 절반은 수분입니다. 하지만 유화물감은 기름이고요. 물과 기름을 섞었으니, 수지 균형이 깨어져 상 분리가 일어나고 말았죠. 때문에 이 근사한 명화는 끔찍하게 손상되어 원래의 색감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미술뿐 아니라 건축, 수학, 음악,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재능을 펼친 다 빈치! 그가 화학만큼은 정복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작품 ‘최후의 만찬’ⓒwikipedia.org

예술을 위해선 죽어도 좋아! – 위험한 화가들

이번에는 조금 오싹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예술에 중독되어 생명을 포기해도 좋았던 화가들의 이야기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정신질환자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그런 질환을 보이게 된 이유가 노란색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답니다. 그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기법을 이용했는데, 연백이나 크롬 황색처럼 납 성분이 높은 페인트를 섞어서 그림을 그렸어요. 이런 색소는 독성이 강해 납중독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죠. 심지어 반 고흐는 노란색 물감을 마구 짜먹기도 했다는 군요.

(좌) 빈센트 반 고흐, (우) 작품 '해바라기'

(좌) 빈센트 반 고흐, (우) 작품 ‘해바라기’ⓒwikipedia.org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는 하얀색을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흰색 안료에는 건강에 치명적인 독 성분이 들어 있었어요. 그가 특히 즐겨 사용했던 연백의 화학 명칭은 ‘탄산납’인데요. 실제로 납을 자른 단면은 흰빛이라고 하네요. 당시에는 연백을 얻기 위해 항아리에 동물의 분뇨를 채우고 얇게 자른 납을 넣어 푹 썩혔어요.

3개월 정도 지나면 탄산이 만들어지고, 납은 증기로 바뀌었죠. 이들이 반응한 탄산납 가루를 곱게 빻아 말린 것이 바로 연백입니다. 이 연백이 황과 반응하면 검은색의 황화납(PBS)이 되는데요. 그의 작품 ‘흰색 교향곡 1번’은 황 때문에 처음의 눈부심을 잃은 채 검게 변색되고 말았어요. 고흐와 휘슬러가 이 화학작용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림을 접었을까요? 아니면, 삶을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예술혼을 불태웠을까요?

(좌)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중) 작품 '흰색 교향곡 1번, 햐안 옷을 입은 소녀', (우) 작품 '흰색 교향곡 2번, 햐안 옷을 입은 소녀'

(좌)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중) 작품 ‘흰색 교향곡 1번, 햐안 옷을 입은 소녀’, (우) 작품 ‘흰색 교향곡 2번, 햐안 옷을 입은 소녀’ⓒwikipedia.org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을 정반대라 생각합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과, 논리적인 이성으로 판단하는 과학은 전혀 다른 듯 하지만요.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만큼은 똑같지요.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조력은 무궁무진! 한계를 모르니, 어쩌면 그 위대함마저 꼭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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